아홉 시 십오 분에 그 말이 나왔다.

지금은 열한 시 사십 분이고, 나는 아직 그 말 안에 서 있다. 그 사람은 이미 잠들었다. 자기가 뭘 말했는지도 모르고.

이게 제일 이상한 대목이다.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있었는데, 한 사람은 그 순간을 두 시간 반째 붙들고 있고 한 사람은 그 순간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다. 서운함은 그렇게 혼자 하는 일이다.

말하면 된다. 아는데 안 한다.


말한다고 쳐보자.

물 마시던 컵을 내려놓고 그 사람이 나를 본다. “그게 왜?”

거기서 끝이다. 그 세 글자를 받아치려면 앞에 삼 년치 사정을 깔아야 하는데, 밤 열두 시에 그걸 시작할 수는 없다. 게다가 밖에서 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. 나도 안다. 그 말은 한 문장이었고, 목소리도 크지 않았고, 나쁜 뜻이 없었을 수도 있다.

사건은 작다. 자국은 크다.

우리는 자국 크기가 아니라 사건 크기로 말할 자격을 잰다. 그래서 매번 자격 미달이 나온다.


처음부터 안 말한 것도 아니다.

재작년에 말했다. “알았어.” 세 글자였고 정말 그걸로 끝이었다. 작년에 또 말했다. 그땐 “또 그 얘기야?”가 돌아왔다. 두 번째가 더 아팠다. 첫 번째는 안 들린 거고, 두 번째는 들렸는데 귀찮았던 거니까.

세 번째는 안 꺼냈다.

이걸 소심하다고 부르면 틀렸다. 값은 확실하고 결과는 불확실한 일을 세 번 하는 사람은 없다. 나는 두 번 해봤고, 배웠다. 삼키는 건 성격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.


그리고 이 집 공기는 내가 관리한다.

애 재우는 순서, 주말 일정, 양가 전화 언제 걸지, 냉장고에 뭐가 떨어졌는지. 누가 이걸 하는지 우리 둘 다 안다. 말한 적은 없지만 안다.

관리자가 서운함을 꺼내면, 자기가 관리하던 공기를 자기 손으로 깨는 게 된다. 그러니 저울이 올라간다. 이 말을 해서 얻는 것과, 내일 아침 밥상이 어색해지는 값.

이 저울은 한 번도 다른 쪽으로 기운 적이 없다.


무엇보다, 나는 그 경로를 이미 안다.

에어컨 한 마디로 시작했는데 삼십 분 뒤에 우리는 결혼 십 년을 결산하고 있다. 오늘의 그 말은 어느새 사라지고, “당신은 원래”와 “너야말로”만 남는다. 몇 번 가봤다. 거기서 이긴 적은 없다.

문장 하나 말하겠다고 관계 전체를 걸어야 한다면, 안 건다. 시작을 안 하는 게 제일 싸다.


여기까지가 네 가지다. 그런데 이건 다 표면이다.

밤에 나를 진짜로 안 자게 하는 건 이 질문이다.

내가 서운할 만한 건가, 아니면 오늘 지쳐서 그렇게만 읽은 건가.

이 질문에 답이 안 나오니까 못 말하는 거다. 앞의 네 가지는 그 다음에 붙은 핑계에 가깝다. 생각해보면 안다. 만약 이게 정당하다고 확신한다면 사소해도 말한다. 안 바뀌어도 다시 말한다. 밥상이 어색해져도 말한다. 십 년을 결산하게 되더라도 말한다.

못 말하는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. 판별이 안 서서다.

그런데 이 질문은 혼자 굴리면 답이 안 나온다. 대신 둘 중 하나로 미끄러진다.

내가 예민한 거야. — 나를 지운다. 저 사람은 원래 저래. — 상대를 판결한다.

둘 다 편하다. 질문이 끝나니까. 그리고 둘 다 틀렸다. 하나는 지울 필요 없는 걸 지우고, 하나는 아직 안 끝난 사람을 끝내버린다.


그래서 필요한 건 참는 법이 아니다. 가르는 법이다.

지워도 되는 쪽으로 기운다면

한 번 있었던 일인데 어느새 “저 사람은 원래 그래”가 되어 있다. 그 말의 뜻을 확인해본 적은 없는데, 가능한 해석 중 제일 아픈 걸 골라놨다. 오늘 내 상태가 바닥이다. 같은 말을 컨디션 좋은 날 들었어도 이만큼 박혔을까.

이쪽이면 오늘 건 내려놔도 된다. 참는 게 아니라 해석을 바꾸는 거다.

지켜야 하는 쪽으로 기운다면

처음이 아니다. 반복된다. 이미 말했는데 안 바뀌었다.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저 사람에게 비슷하게 느낀다. 겪고 나면 매번 소모된다.

이쪽이면 예민한 게 아니라 데이터다. 벗어나려 애쓰지 말고, 말하지 않고도 취할 행동을 설계하는 쪽으로 간다.

그리고 대부분의 밤은 둘 다다. 오늘 나온 그 말은 지워도 되는데, 그게 하필 그렇게 아팠던 이유는 지켜야 할 신호다. 그 둘을 붙여놓고 하나로 처리하려니까 두 시간 반이 걸린 거다.


열한 시 오십 분.

오늘 삼킨 말이 어느 쪽이었는지, 한 줄만 적고 자기로 한다. 세 번 쌓이면 그건 기분이 아니라 기록이니까.